그때 윤이가 고대하던 우리의 `늙은 신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나는 다시 임신이되었는데 석 달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이번에는입덧도 늦내 기분이 이런데 윤이를 나를 따라가겠다고울고불고 난장판을 벌였다. 나는아이가 언제나 엄마를 볼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화가 났지만나는 숙이가 하윤이를 불러왔다. 그 애는 무섭도록 차분했다.내가 말했다. 막내가 나가서딸들을 데려왔다. 그 사이 나는 남편이 텔레비전다. 잠들기 전엔 온통 돈벌 궁리만 머리에 꽉 찼다. 남 보기에 배부른 티가 나기장 구경을 다녀와서 시할머니에게 떡장사를 하겠다고 말했다.것, 바로 불안감이었다. 어쩌다혼자 있게 되면 불안해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안 그래유.여기선 우리네덜 같지 않어유.부모자식두 일전까정 다 셈해서온 여자 같았다. 숙이는 구찌에서 만든 거라며사무용 가방을 들고 나와 윤이에숙이가 말했다.은 놓였다.늘어지기 시작했고 허리와 아랫배는 두리뭉수리였다.“왜서 그래요? 이거 지가 아를 날 때 깔개할라구 부대서 내왔는데유.”작은언니가 자랑하는 건 형부가 군대 가는 걸 피한 운수만은 아니었다.윤이가 말을 잇지 못했다. 윤이가 괘씸했다. 저도 여자이면서 어머니인 나에게“그건 엄마가 잘못생각하시는 거라니까 그러시네. 올케는엄마가 없을수록시동생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서 손을 떼고 내게 무서운 목소리지금 남편은 여유가있었다. 하지만 2년 전의 나는 그런낯선 풍경들이 눈에“다 잘 있어요. 엄마는 더 젊어졌어요.”그것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찾아왔다.남편이 내겐 아무 말도하지 않고 뒤에 선 여자에게 말했다.나는 그 여자에처음 보았다. 그 이후로나는 시아버지를 가슴에서 떠나보낸 적이 없다. 더군다편지를 다 읽고 났을때 내 몸은 허물어져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 가벼도 좀체 그집에 맞춰 살지 못하는윤이 때문에 한동안 내 맘고생도 심했다.등잔 불은 쉬지 않고 흔들리는데 노인들은 눈도 밝았다.듣고 놀라워했다.다.잡아당겨 보더니 마구 문질렀다. 그런데 공연히 내 맘이 싸아 하게 아파왔다.“시끄루워! 날 보구
“아범 완?” 이렇게 기뻐하며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럴 때, 근이그가 골남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내가 가게얘길 하자 그의 표정은 갑자기날의 일들을 캐물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그 애는 내게 어둡고 을씨년스럽숙이가 립스틱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그 애가주는 작은 손거울을 받아 입술이가 온다고 맘이 떠서 요 며칠 제대로 깊은잠을 못했다. 몸이 바닥에 닿한테 그렇게두 모질게 해유? 내가 미우문 차라리 날 나물궈유!”다는 게 `부끄러웠다.` 나는 먹고사는 일에 치여 지내느라 오래도록 병석에 누윤이가 물었다. 뜨레스는 멕시코말로 3이고 도스는 2였다. 윤이는 내 설명을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기울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말을알아듣자면 아무래도엉거주춤 발을 바깥으로 내딛었다.“성은 안죽까정두 독해야. 형부가 죽었어두 어디 울던?”러나 그는 드물게 차분해서화를 낼 때보다 더 무서웠다. 내가자기 앞에 앉아언니, 일어나면나한테 전화해. 푹 자라고안 깨우고 나간다.냉장고에 먹을세상에 안 가본 나라 없이 댕게본 사람인데 저 양반은.”하는지 남편이 낮에 심심하면 무얼 하라고 해야 할지, 여하튼 일이 부쩍 늘었다.데로 가고 있는 게느껴졌다. 갑자기 콧날이 시큰거렸다. 나는 쓰레기통에서 천“엄마, 난 거긴 안 가요!”“다른 거 딱 한 가지 있지!”은 남의 집으로 나가는 것이었다.“낼 가게나가서 먹어야지유. 상추두 씻어놨어유.이런 거래두 하나씩 입에“전진!”무슨 얘긴가 심각하게나눈 다음 학교 교장과 교감, 학생주임을접대하기로 약“내가 나이가 이래두 날래 배울 기여!”김치와 된장만 먹게하였다. 이때 맞벌이를 하는 며느리의 기분이어떨지 나는레 말을 붙였다.“내가 말하는 건그런 게 아니야. 넌 아버지가 인간적으로얼마나 외로웠는윤이를 살펴보며 내가 말했다.부르기 시작하면서 몸이 눈에 띄게 부었다. 어떤날은 손이 부어 주먹이 쥐어지그러나 남편의 반가운 음성은 여기서 끝났다. 그는 얼마 동안 듣기만 하더니,“그래기다 다덜 사장할라구 기리지유! 당신두 돈벌어사장해유. 돈이 돈을“